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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9.12)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푸른하늘 작성일18-09-13 14:07 조회209회 댓글0건

본문

+평화

[ 어제( 9.12)의 말씀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배려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에게 해주라는 황금률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배려는 따뜻하고 감사하며 우리 가운데에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자주 잊는 배려가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내 안에 좋은 생각,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 역시 배려라는 사실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서 부정적인 말만 쏟아 붓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 곁에 있으면 왠지 불편한 마음이 생겨서 가까이 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그의 부정적인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피해 다른 자리로 옮기게 되지요.

반대로 늘 긍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 곁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합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아도 그와 함께 있으면 힘이 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긍정적인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배려란 직접 말하고 직접 행동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배려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저절로 나의 이웃들에게 배려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이 배려는 남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기에 자기 자신 역시 거꾸로 다른 이들의 많은 배려를 받으면서 살 수 있는 여건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마음을 간직하면서 살아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마음이 나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해주기 때문입니다.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을 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사실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들이 채워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하지요.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사람들이 부러워할 능력과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준이 채워져야 행복하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굶주리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미움 받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지요.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정반대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간직하면서 주님께 희망을 두며 살아가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 선언의 주인공입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웃음은 마음의 치료제이며 또한 몸의 미용제이다. 당신은 웃을때 가장 아름답다.
                                      (칼 조세프 쿠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5 김범우 순교자 성지(동굴성지)"


김범우는 1751년 서울 남부의 명례방(현 명동 주교좌성당)에서 중인 역관의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784년 평소 친분이 있던 이벽의 권면으로 입교하여, 이승훈 베드로에게서 토마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후 그의 집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를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양반집에도 또 천민 집에서도 전례 행위를 하기가 힘든 관계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한의사였던 김범우 집에서 모였던 것입니다.

곧 그 이듬해 ‘을사추조적발사건’(1785)이 발생하면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형조에 끌려가 많은 매를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다시는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모이지 않으면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만 믿을 뿐이고, 아버지께 효도를 할 뿐이기에 절대 그럴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끝내 배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멀리 밀양으로 귀양을 떠납니다.

유배된 후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다 유배된 지 2년 만에 형조에서 받은 형벌의 여독으로 1787년 9월 14일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범우 순교자의 묘를 발굴하고 보니 그곳에서 돌 십자가가 나왔습니다.
그 돌에 지금의 제대 위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성당은 성모동굴성당으로, 앞면은 김범우 순교자의 집모양입니다.
이는 순교자의 집을 통해 들어가서 하느님을 만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미사는 매일 오전 11시에 봉헌되고 있고, 사전 예약을 하면 피정과 식사가 가능합니다.

주소는 경남 밀양시 삼량진읍 사기점길 50-100이고, 전화는 055-356-703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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