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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과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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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동흠 작성일17-05-31 18:25 조회1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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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과 응답

                                                                                                                    김평겸 타대오 신부님*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이 환경을 바꿉니다.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이 바꾸는 것이지 환경이 여러분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나오는 두 인물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한 사람은 예리코의 눈먼 거지 바르티메이고, 또 다른 이는 유대인이며 율법 학자인 바르톨로메오(나타니엘)입니다. 정반대의 환경에 있는 이 두 사람을 부르시는데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건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의 간절함입니다. 바르티메오는 사고로 장님이 된 거지입니다.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주님께 간절히 청하지요. 자기 존재 가치가 없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독립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자화상을 가지면 그렇게 살게 됩니다. 자화상이 없는 바르티메오는 간절함을 가졌습니다. 주님이 자기를 고쳐줄 것이라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바르톨로메오는 간절하게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필립보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나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간절하게 하느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린 신앙고백입니다.

 둘째는 주님과 만남입니다. 바르티메오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갔습니다. 겉옷은 주위사람들이 씌워준 자신에 대한 관념이지요. 바르티메오는 자신에 대한 편견과 고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예수님께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가 겉옷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바르티메오를 새로운 사람으로 화시켰습니다.

바르톨로메오는 예수님께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비록 의심은 있었겠지만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만납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단지 언제 어떻게 우리를 부르시는지 알지 못하지요. 우리가 진심으로 그분을 찾고 그분께 나아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상실의 힘입니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때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 상실은 더 나은 것을 위해 내 것을 스스로 버리는 것입니다. 바르티메오와 바르톨로메오는 자신들의 과거를 버리고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갑니다. 상실은 결단을 요구합니다. 꽃이 피면 꽃봉오리가 사라지듯이 상실은 더 큰 성장, 새로운 창조를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합니다. 상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실망감 비판 비방 죄책감 불안정 이지만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상실해야 합니다. 상실은 한편으로 선물이며, 한편으로는 고통입니다. 살아왔던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타고났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 과정 속에 새로움을 얻기 위한 상실이 있습니다. 선택할 일이 있을 때 두 가지 중에 가능하면 더 힘든 것을 먼저 선택하십시오.

 바르티메오와 바르톨로메오는 주님과 만나기 위해서 상실을 택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 안에서 구원이 열렸습니다. 상실을 받아들이고 나에게로 오라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상실은 자기자신을 버리는 것이므로 이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혼자가 아님을 믿고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상실을 겪어야 합니다. 그 고통에 몸을 맡기고 주님께서 고쳐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 상실은 새로운 목적이 됩니다. 상실이 주님의 길을 만들어줍니다.

 넷째는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소경인 바르티메오는 혼자 예수님께 갈수 없었습니다. 바르톨로메오는 필립보가 중재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과 나를 중재하는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중재자 역할, 즉 멘토는 상담자 구원자로 삶의 길잡이이자 지혜의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여러분을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절대 멘토가 되어서는 안 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생각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나머지는 선택의 길을 제시하지 않고 자기의 길만 강요하는 사람입니다.

 다음과 같은 사람을 멘토로 삼으면 좋습니다. 첫째는 지혜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자기의 판단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중재자일수도 있고 인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중재자는 주님을 만날 수 있게 길을 제시하는 사람이며 스스로 길을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부르심은 주님께서 하시고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다섯 째는 ‘주님, 보게 해 주십시오.’ 하는 소망입니다.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안다는 것은 깨닫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깨달음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에, 나를 믿는 사람은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참여한다는 것은 함께하는 것이지요. 함께하는 것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는 확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이르십니다. 바르티메오는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장님 바르티메오는 육체의 건강과 영적인 눈을 뜨게 되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 나서게 됩니다. 치유가 필요한 바르티메오는 주님께 나아가 주님의 동반자가 되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또 다른 중재자로 바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치유가 필요한 장님인 우리는 주님께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당신의 중재자로 살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나타니엘의 신앙고백에 예수님은 '앞으로 더 큰일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시며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열두 제자로 삼으십니다. 

 우리는 장님을 주님께 인도하는 군중일 수도 있고, 나타니엘을 주님께 인도하는 필립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선택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주님께로 나아갈 때 우리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아가야 하고, 나 자신을 버리는 상실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중재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은 주님입니다. 선택은 절박하게 주님을 기다리는 각자의 몫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전해주고 사람들이 올바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절박함의 기도이며, 주님과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버리는 상실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중재자가 될 수도 있고, 중재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주님의 부르심에 겸손하게 응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아멘!

* 김평겸 타대오 신부님 본당 방문 시 하신 특강임 (부산 몰운대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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